베트남 역사 - 호 왕조와 다시 시작된 중국 지배기
1. 건국 배경
쩐 왕조 후기 황제의 무능과 이로 인한 혼란 속에 세력을 확장한 자가 호꾸이리(베트남어: Hồ Quý Ly / 胡季犛 호계리) 입니다. 그는 쩐 왕조가 시행한 과거제도로 선발된 관료와 손을 잡아 쩐 왕조 내부에서 교묘하게 세력을 확장하여, 제9대 황제 예종(陳藝宗)의 외척이 되어 그 신임을 받았습니다. 제10대 황제 예종(陳睿宗)이 참파와의 전쟁에서 전사하여 황제의 위신이 떨어지자, 1388년 제11대 황제 진현(陳晛)을 살해하여 스스로 사위인 순종(順宗)을 옹립하였고,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았습니다.
1394년 상황(上皇)으로서 간신히 쩐 왕조를 지탱하고 있던 예종(藝宗)이 사망하자, 호꾸이리는 즉시 유력한 황족과 중신의 숙청을 시작하였습니다. 1398년에는 성인이 된 순종을 폐위시켜 죽이고, 나이가 어린 소제(少帝)를 옹립하였습니다. 1400년 결국에는 소제도 폐위시키고, 스스로가 황제로서 즉위하였으며, 국호를 대우(大虞)라고 고치고 성을 여(레)씨(黎氏)에서 호씨(胡氏)로 바꿨습니다. 이로써 쩐 왕조는 멸망하고 호 왕조가 건국되었습니다.
2. 멸망
호꾸이리는 숙청과 찬탈을 반복했기 때문에, 주위로부터의 원한과 반감을 사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쩐 왕조의 혈통이 있는 아들 호한창(胡漢蒼)에게 황위를 양위하여 상황이 되었고, 그러나 실권은 여전히 호꾸이리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호꾸이리는 쩐 왕조와 같이 왕족들을 등용하면서도, 한편으로 구 체제의 폐해였던 귀족제도의 폐지나 과거제도의 새로운 개혁에 의한 유능한 인재의 등용, 군사력의 강화, 문예 장려, 호적 제도의 도입등 여러 가지 진보적 개혁을 진행시켰습니다.
그러나 중국 남부에서 세력 확대를 하고 있던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는 쩐 왕조의 복권과 황족의 즉위를 요구하였고, 호꾸이리는 이것을 거절하여 영락제와 대립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명나라의 베트남 침공의 구실을 주어서, 1407년 명나라군의 침공을 받은 수도 타인호아는 함락되었고, 호꾸이리와 호한창 부자는 명나라군에 의해서 남경(南京)으로 호송되어 영락제에 의해서 처형되었습니다.
3. 다시 중국의 지배기...
쩐 왕조의 복권이라는 명분으로 베트남을 침공한 명나라는 20만 대군의 원정으로 순식간에 호왕조를 무너뜨리고 베트남을 다시 중국에 복속시켰습니다. 이때가 1408년 영락 6년입니다.중국의 지배는 21년 간 이어지며, 중국으로부터 다시 독립을 되찾게 되는데, 이때 세워진 왕조가 후기 레 왕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