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역사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전쟁

친절한 대두씨 2023. 1. 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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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짜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부터 시작하여 중국과 치렀던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까지...

전쟁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트남이 치렀던 이 전쟁들은 연속된 사건이다 보니 하나하나 구분 지어 사건을 정리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그래서 한번에 쭈~욱 살펴볼 텐데... 아마도 분량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도차이나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의 독립 과정에서 프랑스, 미국, 중국 등의 국가와 벌인 전쟁을 말합니다. '인도차이나'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말하며, 지금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 해당하는 지형을 말합니다. 베트남은 1954년부터 1979년까지 벌어진 전쟁(1954년 프랑스, 1964년 미국, 1979년 중국)에서 강대국에게 모두 승리를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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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경

1883년부터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독일에게 본토를 점령당한 프랑스는 더 이상 베트남을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틈을 타서 나치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일본이 베트남에 들어와 베트남을 수탈하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일본 역시 베트남에서 물러납니다. 이때 호치민 베트남 전 주석이 베트남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노이에서 독립선언을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결국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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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46년 프랑스와 베트남은 일시적으로 타협을 합니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프랑스연방의 하나로 인정을 하고,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한 남부지역을 코친차이나 공화국을 세우는 것으로 합의합니다. 하지만 이 합의에 대해 두 국가 모두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거기다 프랑스가 하이퐁을 공격. 베트남은 하노이를 공격하면서 두 국가의 전쟁은 심각해져 갔습니다. 약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된 전쟁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 승리를 거두게 되고, 이후 제네바 협정으로 프랑스는 완전히 물러나게 됩니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베트남과 프랑스 양 국가 모두에게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베트남 북부지역을 되찾은 베트남군은 라오스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이를 막고 전쟁양상을 다시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마지막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은 베트남의 북서부 국경지대에 방어기지를 구축하고 베트남군이 덤벼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군의 화력에 베트남군의 피해가 상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베트남군은 프랑스의 방어기지 모두를 포위하는 데 성공합니다. 포위망을 조금씩 좁혀가며 프랑스군을 압박하였고 보급이 끊긴 프랑스군은 결국 항복합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제네바 협정으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료되지만, 프랑스는 군대만 철수시킨 채 협정 이행을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베트남의 총선거가 실시되지 못하고, 결국 우리나라처럼 남, 북에 각각의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미국은 반공을 명분으로 남베트남을 지원하며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남베트남의 계속되는 부정부패와 불교탄압, 인권탄압이 이어지면서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하여 북베트남과 연합을 하여 시민들과 함께 무장투쟁을 합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남베트남에 미군을 주둔시키게 되고 남베트남의 내부 갈등은 점차 심각해지게 됩니다.

 

통킹만 사건

남베트남 내에서 민족해방전선 세력과의 내전 중이던 미국은 이들의 배후세력이라 지목한 북베트남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명분이 없었습니다. 이때, 미 해군이 북베트남 통킹만 인근에서 베트남 해군과 교전을 하게 되는데, 1차 교전은 큰 피해 없이 끝이 나고, 다음날 2차 교전이 발생하여 이를 빌미로 미 의회의 승인을 얻어 1965년부터 북베트남을 직접 공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2차 통킹만 교전은 미국이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작하였음이 밝혀져 상당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북베트남과 전쟁을 시작하게 되고, 미국뿐 아니라 한국, 필리핀, 태국, 호주, 뉴질랜드 등 인도차이나 반도 인근의 미국의 우방국들이 참전하게 됩니다. 북베트남은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지원을 받아 전쟁을 치르는데 이것이 베트남 전쟁으로 알고 있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베트남뿐 아니라, 주변국인 라오스, 캄보디아도 전쟁의 범위에 포함이 됩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라오스를 침공한 북베트남은 '호치민루트'로 알려진 '길'을 얻게 됩니다.

'호치민루트'는 북베트남군이 직접적으로 남베트남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가인 라오스, 캄보디아를 우회하여 남베트남으로 진입 또는 남베트남의 베트콩을 지원하는 루트를 말합니다.

그 결과 미군은 북베트남 세력뿐 아니라 인근 국가에도 폭격을 하며 간헐적인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전쟁의 양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 내 반전 여론 및 베트남 국민들의 결집 등으로 인해 미국에 불리해져 갔고, 결국 1973년 미군이 철수를 결정하고 1975년 남베트남의 대통령궁 (지금의 통일궁)이 하락면서 베트남의 공산통일로 전쟁은 끝이 납니다.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미국과의 전쟁 직후, 인도차이나반도의 정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복잡하였습니다.

캄보디아는 옛 참파의 복귀를 도모하였고 그 결과 베트남과의 사이가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 베트남 공산당의 주요 인사들은 친소련 파로 채워져 중국과의 사이도 나빠지게 됩니다. 캄보디아의 친 베트남 인사들 및 베트남계 인사들에 대한 숙청이 이어지자 베트남은 본격 전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하게 되고, 중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을 침공하게 됩니다.

베트남과 중국의 전쟁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끝이 나지만, 이후로도 여러 국지전투가 발생하게 되고, 중국군의 철수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베트남의 캄보디아 내 크메르루주에 대한 공격은 크메르루주가 태국으로 후퇴하면서 베트남은 태국 국경을 침범함과 동시에 태국 내 공산당을 지지하여 분쟁은 더 커지게 됩니다. 그 결과 태국 공산당은 말레이 공산당과 연합하여 그 세력을 확장시켜 갔고 그 결과 말레이시아와 미국의 직접적인 참전을 야기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라오스에서 일어난 내전도 태국과 중국이 흐몽족을 지원하면서 라오스는 베트남과 손을 잡고 결국 베트남-태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렇게 인도차이나반도 전체에 걸쳐 발생한 전쟁들을 일컬어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 합니다.

 

제 3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베트남은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통해 모든 전쟁의 종료를 알렸습니다.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도 도모하였으며, 이는 도이머이 정책으로 발전하면서 베트남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바탕이 됩니다.

제1차부터 제3차까지... 약 반세기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 중국. 강대국 3 국가를 모두 물리치고 승리를 거둡니다. 이렇게 베트남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족적 단합과 국민들을 이끌 훌륭한 지도자, 그리고 누적된 실전경험 및 탁월한 전술. 전략 등 모든 조건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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