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Vietnam)은 한자로 越南(월남)이라고 한다.
즉 월=viet이다. 그렇다면 왜 월남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일까?
이는 베트남이라는 국명의 기원과 역사가 월이라는 중국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 이 두 단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를까?
공통적인 부분은 바로 오나라와 월나라 일 것이다. 그럼 이 사자성어를 왜 꺼냈을까?
그렇다. 바로 월남의 월이 저 사자성어 속의 월나라이기 때문이다.
월나라는 춘추시대 오나라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지도로 설명하자면 회계 지역인 것이다. 월나라는 융성했을 때는 회계에서 남해, 교지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상당하였다.
그렇다면 베트남사람들이 중국인과 같은 민족인 것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나라도 단군할아버지께서 고조선을 세우셨을 때 지금의 한반도에는 사람이 없었을까?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조선에서 삼한, 부여, 옥저, 동예 및 삼국 등 역사를 거치며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중석기 신석기시대를 거치며 이미 지금의 베트남 지역에 거주하던 정착민이 있었고 월나라는 단순히 당시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다.
자, 지금 베트남 지도를 열어보자.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이다. 하노이는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베트남의 수도였다.
그리고 홍강이 지나고 인근엔 홍강삼각주가 있고 서쪽으로는 안남산맥이 있어 사람들이 정착하기 좋았을 것이다. 농경환경이 좋았을 것이고 안남산맥이 있어 서쪽으로부터의 외세침략을 막기 쉬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월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월은 고대 남방 민족의 통칭으로서 이 지역 사람들과 중원 사람들과는 언어가 달라 대화가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백월은 '배예'이며 중국 '배', '백'씨의 일부는 백월과 관계한다고 믿어진다. 주나라 이후에는 점차적으로 중원 사람들이나 다른 소수 민족들이 저장성에 들어와 살게 된다. 유전자 조사 결과 중원의 중국인과는 차이가 크며, 심지어 중국의 소수 민족 보다 중국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더 이질적인 DNA로 조사되었다. 한나라 이후에는 한족이 대거 이주하여 민족이 물갈이 됐다.
즉, 중국의 한족과는 다른 민족인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우리를 동이족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발해처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나뉘었음을 알 수 있다. 월의 지배계층은 한족이었지만 피지배계층은 월이라 불리는 민족이었다.
이는 한나라를 거치며 더 확고해진다. 한나라(후한) 광무제 때 월지역에서 '쯩'이라는 성씨의 자매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교지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키지만, 마원(마등의 조상)에 의해 2년 만에 진압당한다. 그러다 사섭에 의해 통치받다 삼국이 정립되면서 손권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이렇게 월은 약 1천 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 그동안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자주적 국호가 없이 단순히 월이라는 이름으로 지내게 된다.(물론 그 사이에 전기 리왕조가 있었지만 그 역사가 길지 않다.)
938년 힘들게 중국으로부터 독립 후, 많은 왕조와 많은 전쟁을 치르며 베트남은 남쪽으로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위로는 중국이, 서쪽으로는 안남산맥이, 동쪽은 바다. 베트남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남쪽밖에 없었다.)
그러다 1802년 지금의 베트남 영역을 이룬다.
베트남은 자국의 말은 있었으나 글이 없어 한자를 차용한다. 약 1천 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아온 탓에 한자의 사용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베트남 민족과 나라를 표현할 단어가 越(월)이었을 것이다.
남월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지금의 베트남 북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다. 중국역사 속의 월은 중국의 남부 및 남서부지역. 즉 회계-남해-교지 지역을 월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베트남 북부지역은 이들보다 더 남쪽이기에 남월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남월이 아닌 월남이라는 명칭을 쓰게 된 데에는 중국의 간섭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떠이썬왕조 이후의 응우옌왕조 때 가륭제가 청나라로부터 월남국왕으로 봉해진 것이다.
그러다 자주적 국명이 등장하는데 바로 대월(大越)과 대남(大南)이다.
18세기 떠이썬지역의 응우옌 성씨의 3형제가 난을 일으켰다. 떠이썬왕조는 그 역사가 짧지만 국호를 대월이라 하고 대외적으로는 안남이라고 하였다.(이 시기의 베트남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니 따로 포스팅하겠다)
떠이썬왕조 이후 재등장한 응우옌왕조(떠이썬의 응우옌 3형제와는 다른 응우옌 성씨)의 민망황제는 자주국호로 대남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나 이는 내부적으로 사용하는데 불과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월남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오던 터라 국내, 국외에서는 계속해서 월남(베트남)이라는 국호로 불렸다.
이후, 프랑스 식민시대를 거쳐 독립전쟁이 시작되면서 호찌민은 월맹(베트남독립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프랑스의 인도차이나반도 철수 후 호치민주석이 독립선언을 할 때 베트남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1946년과 1959년 헌법에도 이 국명이 적시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동안 북베트남(월맹 또는 월민)과 남베트남(월남)으로 불렸으나 그 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북베트남, 남베트남 구분 없이 베트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현재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공식 명칭이다.
마무리하며...
한편으로는 대월, 대남과 같은 자주적 국명을 뒤로하고, 중국의 간섭이 있던 월남이라는 국명을 유지한 데에 대해 학자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역사이고 역사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혹시 나중에 다른 이름으로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바뀔지 또 누가 알겠는가? 베트남이라는 이름 속에 월이라 불렸던 이들의 민족의 혼이, 끝까지 중국에 대항하여 결국 독립을 쟁취한 이들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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