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짜오~!!! 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 문화권의 나라들은 종교, 문화가 많이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들 나라와는 다르다.'
보통 동남아시아라고 하면 태국, 인도차이나반도,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생각합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들이기에 우선 제외하고, 아시아 대륙에 있는 나라들 위주로 본다면 이슬람, 힌두, 불교 문화권의 나라들이 대부분입니다. 역사적인 유적지를 봐도 이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다릅니다.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 대부분이 불교와 천주교입니다. 하지만 다른 동남아권 국가들과는 달리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베트남의 초기영토는 지금의 베트남 북부지역뿐이었으며, 이마저도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즉, 중국의 유교문화권 아래에 있었으며,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응오-딘-레 왕조를 세우기 전 까지는 중국지방의 일부분 혹은 속국이었습니다. 당연히 사회 전반적으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없었을까요???
위 사진을 보면, 베트남의 서쪽에 안남산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남산맥은 북-남으로 1100km 정도의 길이이고, 최고봉은 해발 2700m가 넘는 험준한 산맥입니다.
이 산맥으로 인하여 베트남의 서쪽에서 타 국가들이 접근하기 어려웠고, 베트남 역시 영토 확장 시 남쪽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럼 지금의 베트남 중. 남부 지역에는 당시에 누가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에 대한 답은 이제부터 말씀드릴 참파왕국입니다.
참파왕국
참파왕국은 192년부터 1832년까지 베트남 중부 및 남부지역에 있었던 왕국입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계 참족이 세운 왕국으로,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철기 중심의 사후인 문화가 참파왕국의 뿌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참파의 역사
- 참파의 등장
참파왕국의 현재 베트남의 중부지역 꽝남 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말레이계 해양민족이 정착하였는데, 꽝남지역은 안남산맥 동쪽 지역 중에서도 비옥한 토지가 있고 당시 중국과 많은 동남아국가들의 교류가 활발했던 무역항이었습니다. 농업, 상업적으로 유리했던 지역에 위치했던 참파는 그 세력을 키울 수 있었고, 참족의 구리옌은 192년 당시 후한의 교주 지역에 속해있던 지금의 베트남 북부지역인 당시 일남 군을 공격하여 정복하고 왕위에 오릅니다.
- 중국과 전쟁의 역사
3세기에 참파는 교주지역의 일남 군을 완전히 정복하고 구진 군까지 공격을 합니다. 당시에는 현재의 하노이 지역까지 공격하여 일시적으로 지배하는 등 그 세가 아주 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지역을 지배하던 동진에 의해 왕이 죽고 참파의 세력이 잠시 주춤하는가 싶었지만 계속하여 교주지역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443년 남송에 의해 참파는 대패하여 한동안 교주지역을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605년 수나라 양제는 참파가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육. 해 공동작전으로 참파의 수도를 점령하여 조공국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참파는 꽝남지역의 비옥한 토지와 해상중계무역을 바탕으로 국력을 쌓아갔고, 점차 힘을 회복해 갑니다. 그 세력은 9~10세기에 절정에 달했으나 당나라와의 잦은 충돌과 당나라 멸망 후 혼란한 틈을 타 독립한 베트남과의 전쟁으로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베트남과 전쟁의 역사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베트남은 70년 간 응오-딘-레 3개의 왕조가 짧은 역사를 만듭니다. 이때 레왕조가 참파의 수도를 공격하고 참파왕국은 수도를 남부지역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이후, 레 왕조를 이어 세워진 리 왕조 역시 베트남의 세력확장을 남쪽으로 향하는데 참파왕국은 계속된 패배로 계속하여 남쪽으로 밀려납니다. 그러다 12세기 남쪽으로 밀려난 참파는 서쪽에 위치한 크메르 제국과 충돌이 발생하게 되고 12세기말에는 참파 국왕이 크메르제국으로 인질로 잡혀가게 되어 한동안 크메르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계속하여 베트남과 크메르의 압박을 받던 참파는 그 세력이 갈수록 약해져 갔으나, 14세기 참파왕국의 비나수르 왕이 베트남(당시 쩐 왕조)을 세 차례 공격하여 수도를 함락하고 왕(쩐 왕조 예종)까지 살해하는 등 참파를 다시 강국으로 이끌게 됩니다.
하지만 쩐 왕조 이후 7년간 존재했던 호 왕조를 세운, 호뀌리가 쩐 왕조 장군으로 있던 때, 호뀌리에 의해 비나수르왕이 전사하고 참파왕국은 다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15세기 참파는 다시 베트남(당시 후 레 왕조)을 공격하지만 후 레 왕조의 성종에 의해 오히려 참파의 수도가 함락당하게 됩니다. 이때 당시 참파의 왕은 붙잡혀가고 참파는 인도차이나반도 패권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됩니다.
참파가 베트남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게 되는 원인은 참파는 도시국가 연합체를 유지하고 있던 반면에,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중앙집권제를 실시하였고 이는 군사적 응집력의 차이를 보이게 되어 결국 참파에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 참파의 멸망
참파왕국은 결국 베트남의 속국이 되었고, 참족들은 말레이 반도나 캄보디아로 도망칩니다. 하지만 베트남에 남아있던 참족들은 베트남에 동화됩니다. 명맥만 유지하던 참파는 1832년 응우옌왕조에 의해 완전히 베트남에 흡수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응우옌왕조는 참족을 베트남에 정말 동화시키기 위해 동화정책을 실시하였고, 종교와 문화 역시 유교와 베트남 문화를 강제로 수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베트남의 참족에 대한 동화정책은 중단되었고, 오늘날까지 참족은 말레이반도, 캄보디아, 베트남에 소수민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파의 문화
참파왕국 초기에는 오늘날 캄보디아 지역에 위치했던 푸난의 영향을 받아 인도의 힌두문화가 자리 잡았고, 힌두교 국가였습니다. 이는 꽝남지역(호이안에서 약 30km)에 있는 미선 유적지를 보면 알 수 있으며, 발굴된 참파의 유물들을 보면 힌두교 관련 유물들이 많습니다.










이후 인도차이나반도에 유입된 불교문화를 받았지만, 15세기 참파왕국 말에 전파된 이슬람 문화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멸망직전까지 몰린 참파왕국은 이슬람을 신봉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는 참족들은 대부분 이슬람을 믿고 있습니다.
마치며...
오늘날의 베트남의 2/3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참파왕국은 토착세력과 말레이계 해양세력이 합쳐져 만들어진 왕국이었지만 중앙집권화를 하지 못한 한계로 결국 분열되고 역사 속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결국 베트남이 이들을 흡수하여 오늘의 베트남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베트남에 남아있으며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노이와 호치민 두 곳을 모두 가 보면 사람들에게서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쪽지역에서는 중국계의 느낌이 강하다면 호치민를 비롯한 남쪽지역에서는 전형적인 동남아계의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인류학적으로 제가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자세히 설명드리기 어렵지만...
두 곳을 모두 가보신 분들 중에 제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코'와 '피부'입니다. 북쪽지역 출신과 남쪽지역 출신들을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경우를 종종 보는 것 같네요.
중국의 세력권에 위치하여 유교문화와 중국식 제도를 받은 베트남이 안남산맥 때문에 서쪽보다는 남쪽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오늘날의 베트남을 만들었습니다. 분명 그전에 존재하던 힌두계열의 참파를 흡수하여 동화시켰고 그 결과 다른 동남아국가와 달리 힌두교, 이슬람교 문화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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