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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우체국, 노트르담성당 그리고 통일궁

친절한 대두씨 2023. 1. 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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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짜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호치민의 관광지 코스들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예전 제가 직접 관광했던 코스들을 되짚어보며 첫날 일정을 보겠습니다. 

첫날에는 중앙우체국, 노트르담성당 그리고 통일궁으로 갔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딴 길로 새면, 호치민시는 각 군(Quan)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고 치면 각 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서울시 중구, 노원구, 강남구 등등....
다만 각 군 안에서 이제 다시 '구'로 나뉘는 거죠.
제가 갑자기 이런 내용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호치민시에서 볼거리 및 가볼만한 곳들은 거의 다 1군에 모여있습니다. 한인타운, 차이나타운, 공항 및 신도시를 제외하면 1군만 돌아도 호치민시 관광은 거의 다 하시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호치민시는 관광도시가 아니다 보니 관광요소가 극히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베트남에서 호치민 만큼 좋은 곳은 또 없을 거예요. 아무래도 베트남의 경제중심지 이니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 포스팅해 드릴 곳은 호찌민시의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여기서 장황하게 역사까지 이야기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으니 이 부분은 추후에 따로 올릴게요^^.

호찌민에서 가장 큰 성당인 노트르담 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식민 지배시대부터입니다. 1877년부터 1883년까지 지어진 이 성당은 외부는 전형적인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을, 내부는 고딕양식을 보여줍니다. 호찌민 시의 프랑스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이 성당이 이국적인 모습인 것은 물론 건축양식 때문이지만, 지을 당시 모든 자재를 프랑스에서 들여왔던 것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붉은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이 성당의 정면에는 성모마리아 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가 40M인 두 개의 첨탑이 건축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차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유명한 이 성모마리아상에는 “REGINA PACIS ORA PRO NOBIS”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이 문장은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비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수많은 관광객과 신도들이 이 성당 앞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결혼을 갓 마친 커플들입니다. 이곳은 결혼사진을 찍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으며, 그 외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저장하는 중요한 사진은 찍기에 인기가 많은 장소 중 한 곳입니다.

 

우체국 내부입니다. 아치형 천장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내부를 처음 들어섰을 때 마치 예전 서울역청사가 떠오르더군요.
사진 양 옆으로는 업무 창구들이 있습니다.

호찌민시 중앙우체국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은 건축물로 콜로니얼 양식의 외관이 인상적입니다. 우체국 내부는 오래된 기차역처럼 넓고 웅장하며 베트남에서 가장 규모가 큽니다. 아치형 높은 천장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며, 입구 정면에는 베트남의 영웅 호찌민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각 지역으로 우편과 소포 등을 보낼 수 있으며, 국제전화를 이용할 수 있어 많이 찾습니다. 국제전화 이용은 접수처에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적어 신청하면 되며, 이후 지정된 전화부스에서 국제전화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중앙우체국 앞에서 펼쳐진 대학졸업사진과 웨딩사진의 콜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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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통일궁입니다

입장할 때는 몰랐는데...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니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와 슬픔 그리고 반성이었습니다.

 

정말 웅장하고 어마어마한 건물입니다.

 

통일궁은 원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본부 건물이었습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 후 우리나라처럼 베트남도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남베트남에서는 이 건물을 대통령궁으로 사용하며 그 이름을 독립궁이라 칭합니다. 그러다 베트남전쟁 후 북베트남이 베트남통일을 기념하여 이름을 통일궁으로 바꿉니다.
그 내부가 정말 많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 방마다 남베트남 정부가 사용할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두어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하(벙커)부터 지상 6층까지의 건물이며, 당시 정치 및 전쟁상황도 엿볼 수 있습니다.

탱크는 다른데...어찌 포즈는 이렇게 같을까.....ㅠ.ㅠ

이 사진 속의 2대의 탱크는 그 역사적 의미가 상당합니다.
베트남전쟁막판, 북베트남군이 호치민시(당시 사이공)로 진입 후 저 2대의 탱크가 당시 대통령궁의
외벽을 뚫고 들어옵니다. 이로써 남베트남은 항복을 선언하고 전쟁이 종료됩니다.

제가 듣은 바로는 저 2대의 탱크가 대통령궁(통일궁) 내부로 들어올 때조차도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은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매일 반복되는 호화스러운 파티로 저 당시에도 술에 취해 자고 있다가 탱크소리에 놀라 깼음에도 불구하고 그 탱크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야사일 수 있지만, 그만큼 당시 남베트남 정부가 얼마나 안일했고 미국에 의존적이었으며, 자주의지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통일궁을 둘러보며, 무능한 정부가 나라와 국민들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분노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큰 해가 되는 사건이 있었죠. 다만 우리나라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국민들의 힘으로 이겨냈을 뿐입니다.)

당시 남베트남 국민들이 받아야 했던 아픔들을 생각해 보니 6.25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이 받았을 아픔들도 같이 떠오르며 자연스레 숙연해졌습니다.

이 역사는 한 나라의 역사이지만 개인도 역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계속 발전해 나아가야 허망한 결과는 없을 거라는.... 저의 인생에 대한 반성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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